신앙/설교

마굿간에 온 마기들

행복한순례자 2008. 12. 24. 11:18

[출처] [설교] 마굿간에 온 마기들 (안양 빛된교회) |작성자 목수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내려 두고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날이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하느님의 독생자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온 기쁨이 충만한 날이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예루살렘의 성도 있었고 권력의 로마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페르시아의 마기들에게 별을 보여 주며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셨다.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던 날 밤에 머나먼 동방으로부터 온 마기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하며 가지고 온 예물을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주시할 것은 그들이 가지고 와서 아기 예수에게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 보다 그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  동방에서부터 머나 먼 길을 찾아 아기 예수를 만나기까지의 마고스의 여정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

 

  그들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별을 따라 왔다.  마기들이 출발한 곳은 동방이라고만 기록이 되어 있다. 동방은 파사이며, 파사는 페르시아 즉 오늘날「이란」을 가르킨다.


  파사제국은 히브리 민족이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 갔다가 70년이 되어서 돌아올 때에 4개월이나 걸려서 돌아온 아주 먼 거리의 나라이다.  그러니까 마기들이 페르시아를 출발하여 베들레헴까지 오기에는 아주 먼 거리이며 그들이 약대를 타고 왔다 할지라도 적어도 2개월 이상은 걸렸다고 볼 수가 있다.  밤에만 볼 수있는 이상한 별을 2개월이나 넘게 보면서 찾아가는 길이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기들이 별을 보고 그리스도를 찾아온 그들의 여정은 오늘날 교우들이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신앙의 여정이라고 믿고 새로운 희망과 신앙생활의 지표를 삼고자 한다.

 

  마기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성경을 통해 동방박사로 흔히 알고 있다.  마기(MAGI : 영어발음으로 메자이)는 마고스(MAGOS)의 복수인데 당시 이스라엘의 동쪽인 페르시아에서 성행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를 말한다. 한 명일 땐 마고스, 둘 이상일 때는 마기라고 부른다.

 

  그들은 별을 보고 시대의 운명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다.  그들은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어떤 영달이나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잠들고 온 세상이 잠든 밤에 그들은 구약의 예언을 기억시키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은 자들이다.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 태어나기 수개월 전에 하느님은 동방의 마기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구원의 시작을 알리셨다.  그리고 아기 예수가 탄생하던 날 밤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를 통하여 메시아의 탄생을 처음으로 알려 준 사건은 하느님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유다의 총독 가이사 아구스도가 명령을 내려서 모든 유대인들이 호적정리를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때이다.  이때를 놓칠세라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장사꾼들의 아우성 소리로 가득찬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가 탄생된 것을 하느님은 목자들에게 알려 주시고 수개월 전에 동방의 박사들에게 알려 주신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찾아온 그들은 이상한 별을 발견하였을 때에 그 별이 곧 새로운 큰 왕의 탄생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믿게 되고 4명의 마기들은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캐츠피(페르시아의 까스빠르가), 밀초어(다마스꾸스의 멜키오르), 팔다사(바빌론의 발타사르), 그리고 알타반(페르시아의 아르타반)이다.  그 중 알타반은 도중에 일행과 떨어지게 되고, 아기 예수를 찾아 온 유대를 헤멘다.  그는 30여년이란 세월이 훨씬 지나서 겨우 아기 예수를 찾았는데 그 곳은 골고다 언덕이요,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현장이었고 이미 어른이 되어있는 예수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벤허」라는 영화를 통해서 이런 장면을 목격할 수가 있다.

 

  마고스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생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별을 보며 정말 새로운 왕이 탄생된 곳이 어디인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신념대로 정말 새로운 막강한 왕이 태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찾아 나서기는 하였어도 어디까지 가야하며,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신념대로 모험을 강행한다.  이것은 오늘 교우들에게 멋진 교훈을 주는 장면이다.  

 

  교우들은 항상 새로운 믿음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모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믿음이란 그 자체가 미지의 세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사도가“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하였듯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 바로 믿음이다.  신앙생활을 어제가 그랬으니 오늘도 그렇고, 작년에 그랬으니 금년도 그렇고, 금년에 그랬으니 내년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죄악이다.


  죄악 중에 가장 큰 죄악은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자포자기와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안일무사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교우들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모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동방의 마기들과 같은 믿음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한다.


  2008년의 성탄을 맞이하여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모험과 도전의 신앙을 가지고 다가오는 2009년도에는 새로운 모험적인 신앙으로 새로운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은 로마의 제국 하에서 탄압과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였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시대가 소망은 보이지 않고 낙망과 절망의 어두움뿐이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부패하고 타락한 어두움의 시대였다.  메시아가 탄생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당시의 율법 선생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될 것이라는 것을 성서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믿음은 예언을 모두 잊어버린 어둠의 세상이었다.  먼 길을 걸어 찾아온 마기들의 방문을 받고서야 충격적으로 메시아의 탄생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그리고 골짜기를 지나서, 사막을 횡단하며 국경을 통과하는 여행은 쉬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강도들의 위험도 있고 맹수들의 위험도 있다.  그러나 마기들은 시대적인 어두움도, 종교적인 어두움도, 자연적인 어두움도, 그들의 불타는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빛된교우들이여 앞이 캄캄한가? 

  소망과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캄캄한 밤과 같은가? 

  그 어두움을 헤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모험적인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의 정치적 어두움을 헤치고, 종교적인 어두움도 헤쳐 나가야 새로운 역사가 우뚝 서게 됨을 믿어야 한다.

 

  마기들도 실수를 범하였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람이 이집트로 갔다가 고난을 당한 것처럼 마기들은 헤롯이 있는 예루살렘 왕궁을 찾아갔다가 큰 오류를 범하고 만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왕이 태어나면 당연히 왕손의 혈통을 통해서 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흐린 판단이 실수의 원인이 된다. 

 

  이사야서에 보면(사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자기들의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고 결정하기에 판단 착오로 인하여 베들레헴에는 두 살 아래의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학살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실수가 이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기들이 바른 길을 다시 찾았을 때 잃어버렸던 별이 다시 나타나서 그들의 길을 인도해 준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피조물은 아무도 자신할 수가 없고 장담할 수가 없다.  누가 그 실수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냐 이다.  마기들이 헤롯 왕궁으로 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 그들을 동방에서부터 인도해온 별이 다시 나타나 베들레헴으로 인도해 준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길을 버리고 세상 길로 가고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부귀에 이끌려 잘못 갔다가도 돌이켜 회개하면 하느님은 다시 인도해 주심을 가르쳐 주시는 이야기다. 


  마기들이 머나먼 길을 왜 왔는가?  만왕의 왕 예수에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려고 찾아온 것이다.  즉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하느님께 경배하는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극치요.  생활의 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이야기 한다.(약2:14)  예배 없는 신앙이 있을 수 없고, 감사 없는 신앙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교우들은 항상 모이기를 힘쓰며 하느님께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한다.


  감사는 생명과 바꾸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사소한 일에도 값없이 이 감사를 팔아 버리고 만다.  사사로운 내 욕심에 이끌려 예배를 저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조로아스트교도인 마기들도 몇 달을 걸어서 그리스도를 찾아 경배하였는데 오늘의 우리들은 좋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제대로 하느님께 제단을 쌓지 못함이 어찜인가? 


  마기들은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한 후 천사의 지시를 따라 헤롯에게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간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에, 하느님의 계명에 하느님의 율례와 법도에 순종하는 모습이다.  하느님은 우리 앞에 두 가지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는 순종하는 길이요, 또 하나의 길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길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은 페르시아의 마기들이 오직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 어려운 여정을 감수한 결과 그들은 온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탄생하신 메시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이 아무리 어렵고, 내가 가는 길이 힘들고 괴롭다고 하여도 참고 견디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믿음으로 힘쓰고 노력한다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시 오실 예수의 재림하는 날,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가 탄생하셨을 때에 울려 퍼지던 천사들의 합창소리가, 오늘 빛된교회와 각 가정에서 울려지길 두 손 모은다.

 

 

ps. 성서에는 동방박사가 몇명이라는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어려서부터 동방박사 3사람이라는 잘못된 기억이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알타반이 일행을 놓치게 된 연유는 가난한 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기 예수를 찾아가면서

       가진 모든 것들을 나누어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