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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에 관하여
행복한순례자
2008. 12. 30. 11:53
출처 http://www.freeview.org/bbs/board.php?bo_table=f001&wr_id=380
웹서핑을 하다보니 이런 글도 있네요.. 사도신경을 비판하는데 또다른 보수 그룹에서 비판하는데
그 결정적 이유가 아무래도 사도신경이 가톨릭적인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긴 킹제임스역본만 떠받드는 말씀보존학회가 기존 보수 교회의 성경관이 어떠니 하면서
비판하는 걸 보면 기가 찰 노릇이지만.. 암튼 정보차원에서 대충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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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의 신학적, 교리적 오류
"자, 신앙고백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오늘날 어느 성당이나 개신 교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사도신경" 암송하는 소리다(카톨릭용과 개신교용이 조금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같다). 필자도 27년간 장로교회서 예배시간마다 암송했던 신앙고백(?)이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은 오히려 "사도신경"으로 나의 신앙을 고백해 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또한 한때는 "사도신경을 하는 교회는 이단이 아니고,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 교회는 이단."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다. '사도신경'이 하나의 기준이었다. 어느 이단판별가 역시도 '사도신경'을 이단의 판단기준으로 제시하였고, 또한 장로교 모교단 이단판별 지침서에도 '사도신경'이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하고 안 하고는 이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하고 가장 큰 이단인 로마카톨릭이 사도신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교황권을 말하고 화체설, 교황무오설, 성모 몽소승천. 무염시태, 성상숭배, 고해성사 등을 말하고 있으며 성경과 교황의 교시를 동일한 권위에 올려놓고 있다. 만약 이러한 교리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있다면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할 모범이 될 것이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이 행하는 그 어떤 교리나 행위도 성경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성경 이상의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애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최종권위이기 때문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왜 사도신경을 그리스도인의 신앙(믿음)의 고백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첫째는 그것이 주장되는 바대로 열 두 사도들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둘째는 그것이 로마 카톨릭의 산물이요 유산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그것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필립 샤프는 "논리적 명쾌함, 엄격함 그리고 정확성을 갖춘 걸작으로 그 무엇으로도 능가될 수 없다. 만약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신비의 고갈될 수 없는 깊이들을 설명할 어떤 방도가 있었다면 예배에서 사용될 수 있는 사도신경이야말로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사도신경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충분히 담고 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중요한 모든 교리들이 사도신경 안에 요약되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할 보편적이고 확실한 교리들이 너무나 많이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필자는 사도신경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그 증거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제 사도신경을 한 문구, 한 문구 살펴보면서 신학적, 교리적인 잘못들을 성경적으로 바로잡아 보자.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전혀 문제가 없을 법한 문구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겐 이 문구로는 만족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도 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골 1:15,16 계 3:14, 욥 26:13; 33:4). 창조는 하나님만의 고유한 사역이다(창 1:1). 그러나 그 사역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역이지 성부 하나님(아버지)만의 사역이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사실을 극구 부인하겠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하나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도신경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위일체야 말로 성경의 핵심 교리다. 그런데 아버지를 언급하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성령님을 언급했으니 그것으로 끝났다는 것인가? 만약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암송해야 할 신앙고백이 있다면(그런 것이 있다면), 거기에 당연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요일 5:7 - 개역성경은 삭제하고 있다.)
전혀 문제가 없을 법한 문구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겐 이 문구로는 만족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도 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골 1:15,16 계 3:14, 욥 26:13; 33:4). 창조는 하나님만의 고유한 사역이다(창 1:1). 그러나 그 사역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역이지 성부 하나님(아버지)만의 사역이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사실을 극구 부인하겠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하나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도신경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위일체야 말로 성경의 핵심 교리다. 그런데 아버지를 언급하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성령님을 언급했으니 그것으로 끝났다는 것인가? 만약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암송해야 할 신앙고백이 있다면(그런 것이 있다면), 거기에 당연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요일 5:7 - 개역성경은 삭제하고 있다.)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이 문구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정말 그런가?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외아들'이란 단어 때문이다. 우선 '그 외아들'이라고 했을 때, '그'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여기서 '그 외아들'의 '그'는 하나님인가, 예수님(아들)인가 불분명하다. '그'라는 낱말이 대명사라면 당연히 예수님이고, 소유격이라면 '그의 외아들' 그래야 맞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아니다. 바로 '외아들'이다. '외'란 단지 하나만을 가리킨다. 성경이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라고 말씀하고 계신다(요 1:18.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요한복음 참조).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요 1:12).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그러나 '외'아들이라면, 예수님 말고는 그 누구도 '아들'이 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문구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정말 그런가?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외아들'이란 단어 때문이다. 우선 '그 외아들'이라고 했을 때, '그'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여기서 '그 외아들'의 '그'는 하나님인가, 예수님(아들)인가 불분명하다. '그'라는 낱말이 대명사라면 당연히 예수님이고, 소유격이라면 '그의 외아들' 그래야 맞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아니다. 바로 '외아들'이다. '외'란 단지 하나만을 가리킨다. 성경이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라고 말씀하고 계신다(요 1:18.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요한복음 참조).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요 1:12).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그러나 '외'아들이라면, 예수님 말고는 그 누구도 '아들'이 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3)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아멘, 인가? 주의해야한다. 로마 카톨릭의 독소가 숨겨져 있다. 누가복음 1:35은 분명히 "성령께서 너에게 임하실 것이며,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그러므로 너에게서 탄생하실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동정녀"란 단어를 주목하라! "the Vergin"과 "a vergin"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로마카톨릭은 마리아를 영원한 처녀로 공인하고 있다. 예수님을 낳을 때도 처녀였으며, 영원히 처녀의 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the Vergin"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성경은 "한 처녀"(a vergin)라고 말씀하고 있다. "보라, 한 처녀(a vergin)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사 7:14)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을 때까지만 처녀였다. 이는 성경이 증명하는 바이다(막 63).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폰티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는가? 성경을 읽어보라! 어쩌면 백보좌 심판석에서 빌라도는 주님께 한탄할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이 제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저한테 고난받았다고 하는 겁니까? 억울합니다......" 이 문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을 가리우고 있다. 빌라도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준 인물이지만, 그는 오히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쓴 흔적을 여러 곳의 성경에서 읽을 수 있다(마27:24 ; 눅23:4, 14-22, 행 3: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유는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느니라.](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롬 5:8)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분명하다. 죄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폰티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는가? 성경을 읽어보라! 어쩌면 백보좌 심판석에서 빌라도는 주님께 한탄할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이 제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저한테 고난받았다고 하는 겁니까? 억울합니다......" 이 문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을 가리우고 있다. 빌라도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준 인물이지만, 그는 오히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쓴 흔적을 여러 곳의 성경에서 읽을 수 있다(마27:24 ; 눅23:4, 14-22, 행 3: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유는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느니라.](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롬 5:8)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분명하다. 죄 때문이다.
(5)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orm the dead;)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고전 15:4). 그러나 이 문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삭제된 문구가 있다는 것이다.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
일반 교회들에서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가 올라오셨다고 말하면 화들짝 놀래고 그럴 리 없다고 말하겠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구가 당연히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다녀오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엡 4:9)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벧전 3:19)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고전 15:4). 그러나 이 문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삭제된 문구가 있다는 것이다.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
일반 교회들에서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가 올라오셨다고 말하면 화들짝 놀래고 그럴 리 없다고 말하겠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구가 당연히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다녀오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엡 4:9)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벧전 3:19)
(6)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여기도 주의해야한다. "아버지"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사도신경이라면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면서 왜, 있는 그대로 암송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하는가?(하기사 성경도 자기들 마음대로 삭제하고 첨가하고 변개하는데, 사도신경쯤이야.....)
여기도 주의해야한다. "아버지"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사도신경이라면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면서 왜, 있는 그대로 암송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하는가?(하기사 성경도 자기들 마음대로 삭제하고 첨가하고 변개하는데, 사도신경쯤이야.....)
(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 '저리로서' 아는 사람, 손들고 나와보세요...." 오늘날 '저리로서'라는 표현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알 수 없는 말을 신앙고백으로 주문 외우듯이 하는 행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 '저리로서'라는 말은 "그곳"이라는 옛 말에다가 조사 "-으로부터"에 해당되는 옛 표현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그 곳으로부터' 라는 뜻이다. 이렇듯 뜻도 모르고 암송하는 것을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도행전만 똑바로 읽어 보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말하기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바로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더라.](행 1:11)
" '저리로서' 아는 사람, 손들고 나와보세요...." 오늘날 '저리로서'라는 표현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알 수 없는 말을 신앙고백으로 주문 외우듯이 하는 행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 '저리로서'라는 말은 "그곳"이라는 옛 말에다가 조사 "-으로부터"에 해당되는 옛 표현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그 곳으로부터' 라는 뜻이다. 이렇듯 뜻도 모르고 암송하는 것을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도행전만 똑바로 읽어 보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말하기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바로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더라.](행 1:11)
(8) 성령을 믿사오며(I believe in the Holy Ghost;)
끝인가? 성령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여호와의 증인들도 성령을 믿는다, 안식교인들도 성령을 믿는다 심지어 안상홍 증인회(하나님의 교회)도 성령을 믿는다. 성령의 무엇을, 어떤 것을 믿는다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인격적인 성령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단지 성령의 존재하심만을 믿는 것이 아니다.
끝인가? 성령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여호와의 증인들도 성령을 믿는다, 안식교인들도 성령을 믿는다 심지어 안상홍 증인회(하나님의 교회)도 성령을 믿는다. 성령의 무엇을, 어떤 것을 믿는다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인격적인 성령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단지 성령의 존재하심만을 믿는 것이 아니다.
(9)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사도신경의 가장 문제가 되는 문구 중에 대표적인 것이다. "거룩한 공회와"라고 되어 있는 문구에 대한 영어 표현은 "거룩한 카톨릭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이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을 외우는 사람들은 매주 로마 카톨릭 교회를 믿고 있는 것이다. 로마카톨릭은 오직 교회, 곧 로마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사도신경의 가장 문제가 되는 문구 중에 대표적인 것이다. "거룩한 공회와"라고 되어 있는 문구에 대한 영어 표현은 "거룩한 카톨릭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이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을 외우는 사람들은 매주 로마 카톨릭 교회를 믿고 있는 것이다. 로마카톨릭은 오직 교회, 곧 로마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알다시피 "카톨릭"이라는 말은 성경적인 용어가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말은 없다. 더욱이 교회사적으로 살펴보면 카톨릭 교회를 거룩한 교회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다. 암흑 시대에, 특히 12-13세기 두 세기 동안만 하더라도 그 교회는 5,000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로마카톨릭 교회가 거짓된 교회라고 말한다. 존 칼빈이나 마틴 루터나 존 웨슬리까지도 모두 하나같이 카톨릭 교회는 거룩한 교회가 아니며, 적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말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의 후예라고 일컫는 개신교회들은 하나같이 카톨릭 교회를 "거룩한 교회"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신경을 만든 카톨릭 교회가 자기들만이 지상에서 유일한 교회이므로 자기들 교회의 결정대로 믿고 따르라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인데, 여기에 개신교회들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개신교인들은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거룩한 공회"라는 말로 바꾸어 쓰고 있을 뿐이다(어떤 이들은 Catholic을 아예 Universal로 바꿔 사용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공회"라는 말도 성경에서는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말이다. 예수님도 공회에 끌려가셨다(마 26:59, 막 15:1). 제자들과 스테판, 바울 등도 공회에 끌려갔었다(행 5:27; 22:30). 공회야말로 마귀가 맡긴 일을 수행하는 곳, 즉 성경의 진리가 전파되는 것을 반대하는 곳이며, 결코 거룩하지 못한 곳이다. 그런데도 개신교회에서는 예배 때마다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the Communion of Saints)라는 대목에서 주의할 점은 여기서 교통이란 주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교제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도신경에서의 "성도들과의 교통"은 죽은 성인들과의 교통을 말한다. 이 말은 로마카톨릭 교회의 교리를 정확히 드러내는 말이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교제"라는 것을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 뿐만 아니라, 죽은 성도들에까지 확대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도신경을 성자숭배와 죽은 사람에게 기도하는 그들의 교리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Stephen Benko, The Meaning of Sanctorum Communio, Napervill: Alec R. Allensoninc, 1964, p.118.).
성경적인 의미에서 "saints"는 "성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전 1:2). 하지만 카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saints"는 "성자", 즉 죽은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뒤에야 특별 심의를 거쳐 서품되는 특별한 사람을 가리키는 비성경적인 개념이다(이기정 편저, <교리, 전례, 용어 해설>, 서울, 카톨릭 출판사, 1987, pp.129-130.). 성경은 죽은 자와 교통하는 것은 마귀적인 것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레 19:31; 20:27, 신 18:11-12).
그럼에도 매주일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면서 로마 카톨릭의 마귀적인 교리를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고쳐야 한다고 하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만든 로마카톨릭의 정확한 의도를 안다면 굳이 바꾸고 말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10)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The forgiveness of sins;)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주의해서 읽어 보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다. 완료가 아니라 진행형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믿는 것이지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한 죄인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면, 영생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한다. 죄의 문제가 완결된 것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의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매주 미사와 고해성사를 함으로 죄가 사해진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또한 더욱 주의하라! 죄 사함의 근거가 없다. 어떻게 죄가 사해진다는 것인가? 로마 카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희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의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린 것을 믿지 않고 사제(신부)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가 나누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로마카돌릭에서 말하는 죄의 사면이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가 받는 완전한 사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과 사제와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사면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일허게 말씀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히 9:12)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히 9:28) [그런즉 예수께서도 자신의 피로써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근거한 죄 사함이 아닌 것은 그 어떤 것도 죄를 사할 수 없다.
(11) 몸이 다시 사는 것과,(The resurrection of the body;)
몸의 부활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어떤 몸인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몸은 현재 자신이 입고 있는 몸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성도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될 것임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은 얼마나 가치없고 볼품없는 몸인가? 그런 몸을 입고 부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성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완전한 몸으로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 3:21)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롬 6:5)(고후 3:18, 요일 3:2, 골 3:4, 고전 15:49. 참조)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헛되고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로 판명될 것이다(고전 15:17,19)
몸의 부활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어떤 몸인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몸은 현재 자신이 입고 있는 몸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성도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될 것임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은 얼마나 가치없고 볼품없는 몸인가? 그런 몸을 입고 부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성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완전한 몸으로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 3:21)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롬 6:5)(고후 3:18, 요일 3:2, 골 3:4, 고전 15:49. 참조)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헛되고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로 판명될 것이다(고전 15:17,19)
(12)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냥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사느냐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하늘나라와 지옥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사람은 실제적으로 모두 영원히 산다. 그러나 그 영원을 어디에서 보내느냐에 따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저주로 나눠지게 되는 것이다.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것도 영원히 사는 것이지만, 그것은 저주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냥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사느냐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하늘나라와 지옥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사람은 실제적으로 모두 영원히 산다. 그러나 그 영원을 어디에서 보내느냐에 따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저주로 나눠지게 되는 것이다.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것도 영원히 사는 것이지만, 그것은 저주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고백은 어디에서 영원히 사는지에 대한 고백을 포함하지 않는다. 로마카톨릭은 연옥을 가르치기 때문에 어디에서 영원을 살든 별 상관없을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은 한 혼이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인가, 관심이 많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인이 어디에서 영원을 지내야 하는지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결론
오늘 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여전히 주일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는 교회는 이단이라고 정죄하는데, "과연 사도 신경이 이단 판별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답은 "아니다"이다.
미국의 독립침례교회들과 복음교회들은 여전히 사도신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두 이단이란 말인가? 우리 나라에도 부분적으로 사도신경의 오류를 알고서 신앙고백으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너무나도 미약하다. 왜냐하면 한국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사도신경'을 이단을 가늠하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해야한다. 이단을 가름하는 잣대는 '사도신경'이 아니라 "성경"이다.
사도신경은 열 두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며,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온전히 정리한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 신학적, 교리적 오류를 담고 있다. 로마카톨릭의 속임수임을 주의해야 한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신앙고백을 축소하다보니 조금 빠지고 설명이 부족한 점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왜 축소되고 부족한 신앙고백을 굳이 매예배시간마다 반복하고, 더 나아가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인 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 너희 자녀들아, 이제 내게 경청하고 내 입의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라. 네 마음이 그녀의 길들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며 그녀의 행로들로 그릇되이 가지 않게 하라. 이는 그녀가 많은 사람들을 상처내어 쓰러뜨렸음이니, 정녕, 많은 강한 자들이 그녀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느니라. 그녀의 집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며 죽음의 방들로 내려가는 길이니라.](잠 7:24-27).